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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웨이트의 조개] ➂ 공짜 공원을 어슬렁거리면 생기는 일 - 박조개

최종 수정일: 2022년 4월 9일




The King’s Bastion, the Club House Hotel, Gibraltar (1844)_George Lothian Hall



쿠웨이트에서 살던 집은 복층 아파트였다. 위층엔 침실이 세 개, 아래층엔 부엌과 로비가 있었다. 이사 온 첫날 아직 가구가 들어오지 않았을 때, 로비는 무도회장을 연상케 했다. 허무하도록 넓었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닿는 유리창이 벽을 대신했다. 창밖으로 한가한 차도와 바다가 내려다보였다. 움직이지 않는 아라비아만(灣)이 쪽빛으로 빛났다. 바닥은 매끈한 하얀 돌이었다. 이 넓은 공간을 어떻게 사용할 건지 결정권은 아빠에게 있었다. 아빠는 가장 아빠다운 결론을 내렸다. 아래층 로비는 TV, 쇼파, 컴퓨터, 책꽂이로 꽉 찼다. 거대한 창문에 촌스러운 빨간색 커튼을 달았다. 이제 이곳을 집이라고 부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엄마는 그 커다란 집을 매일 쓸고 닦았다. 헉헉대면서 바쁘게 청소하고 요리하다가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있는 거대한 창문을 가만히 응시하곤 했다. 파도 한번 치지 않는 무더위 속의 바다만 있었다. 뭐가 좋은 지 멍한 표정으로 그것을 들여다보는 엄마가 답답했지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엄마는 그곳과 하나가 되었다.


ⓒ 박조개


내 방에는 이사 오면서 새로 장만한 가구들로 꽉 차 있었다. 침대, 책상, 옷장, 책꽂이 모두 하얀색이었다. 침대가 벽 쪽으로 붙어있었고, 벽에 몇 장의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아르센 뤼팽이 애꾸눈으로 방 내부를 응시하고 있었다. 옷장 옆에는 전신거울을 놓았다. 책상 앞에는 사람이 통과할 수 있을 만큼 큰 창문이 있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 바다를 보곤 했다. 때때로 창문을 활짝 열었다. 책상 위로 올라가서 창틀에 발을 올렸다. 바다와 가까워도 아파트 주변은 사막이었다. 모래와 수평선을 응시했다. 그 순간에조차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무더운 공기만 확 끼쳤다. 결국 책상에 주저앉았다.

집과 바다 사이에 커다란 직선 도로가 있었다. 횡단보도는 보이지 않았다. 람보르기니라나 페라리라나 하는 비싼 스포츠카가 빠르게 지나가면서 거센 바람을 일으켰다. 바다로 가려면 그 도로를 가로질러 뛰어야 했다. 차 한 무리가 지나가면, 그다음 떼가 오기 전에 쏜살같이 달렸다. 스포츠카가 순식간에 달려와 내 몸을 덮칠 수도 있었다. 기회를 보고 또 보다가 에라 모르겠다, 싶을 때 후다닥 뛰었다. 달리는 나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상상을 했다. 목숨을 건 달리기였다.

도로 건너편에 사피르 호텔이 있었다. 궁전처럼 거대한 호텔이었다. 석유가 발견된 이후부터 다양한 이주노동자가 출장 오는 쿠웨이트에는 고급 호텔이 많았다. 호텔은 근처 바닷가를 독차지했다. 바다에 가려면 걸어서 십오 분 정도 떨어져 있는 공짜 공원까지 가야 했다. 공짜라고는 해도, 꽤 큰 공원이어서 한 바퀴 도는 데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 나는 아침 운동 삼아 이 공원에 다녀오곤 했다. 아침 운동일 수밖에 없었다. 정오가 넘어가면 시작되는 사막 특유의 햇빛은 사람이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뇌까지 따끈해졌다. 일사병으로 쓰러지지 않으려면 해가 뜨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 박조개

바다가 보이는 방향으로 세워진 벤치가 있었다. 학교를 가지 않는 날에는 책도 가지고 가서 한참을 앉아있었다. 공짜 공원은 더러운 곳이라 벤치 역시도 더럽기 짝이 없었다. 밑에는 해바라기 씨와 담배꽁초가 수북했고 의자는 끈적끈적했다. 눈앞의 움직이지 않는 아라비아만은 멍하니 바라보기에 적절했다. 날씨만 허락된다면 하루종일도 앉아 있을 수 있었다.

“당신, 어쩐지 슬퍼 보여요.”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몸집이 크고,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아저씨였다. 잠깐 걷자는 말에 별생각 없이 따라나섰다. 그는 이집트인이라고 했다. 공원 위쪽에 있는 맥도날드 가게에서 일한다고 했다. 나는 이집트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처음이라서 이것저것 물어보았지만, 사실은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둘 다 영어 실력이 별로였다.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있는데, 뜨거운 태양이 자꾸만 얼굴을 때렸다. 손으로 가려도 도저히 눈이 부시고 뜨거워서 어쩔 줄 모르겠을 즈음에야 나는 집에 가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가 얼굴을 들이밀며 다음에는 언제 이 공원에 오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 때나 온다고 했다. 다음날부터 매일 공원에서 그를 보았다.

아무리 몇 시간 차이를 두고 공원에 가도 꼭 그가 있었다. 공원 한 쪽 구석에서 친구들과 떠들다가 내가 보이면 다가왔다. 내가 아랍 여자들과는 다르게 날씬해서 좋다고 했다. 아랍여자들은 금세 뚱뚱해지며 무분별하게 먹는다나. 나는 한국인 기준으로, 마른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다이어트를 한 참이어서 기분은 좋았다.

“너라면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아.”

내게 싸구려 목걸이를 쥐여주며 말했다. 쑥스러워하며 ‘네가 어려서 결혼은 무리겠지만...’ 이라고 덧붙였다. 자기 차에 타라고 했다. 데려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그가 몇 시간씩 공원에서 기다리는 것도 부담스러웠던 처지에 심경이 복잡해졌다.

‘설마 이 아저씨... 진심은 아니겠지?’

나는 도망치고 말았다. 무서웠다. 아빠가 기다린다고 말하고는, 뒤돌아 뛰었다. 그 후 며칠간 그 공원을 찾지 않았다. 쿠웨이트의 공원에는 여자 낚으러 어슬렁거리는 아랍인이 많다는 얘기를 나중에 전해 들었다. 그는 그 많은 남자 중의 하나였을까. 아니면 진심으로 열일곱 살의 동양인에게 사랑에 빠졌던 걸까.

한인회의 여자애들은 이런 농담을 주고받았다.

“너희들 이 얘기 알아? 아랍 남자들은 동양인 여자를 납치하는 걸 좋아한대. 왜냐구? 우린 털이 별로 없잖아. 아랍 여자들은 털이 우글우글 하다나. 그래서 한국인 여자애를 차에 태우고 무조건 사막으로 간대. 사막으로 가면 도망치지도 못하잖아? 그 사막에서 강간하고 죽이고 도망간대.”

사막은 덥지만 건조하다. 인간이 수입해 들여온 물을 뿌려대 만든 화단에서 벌레들이 생겨났다. 축축하고 따듯하니까. 벌레들은 물이 끊겨진 곳에 가면 곧 죽고 만다. 여름이 되면 벌레들이 온 사방에 날아다녔다. 바퀴벌레만 한 것이 공중에 날아다녀서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눈앞에 닿을 듯했다. 밤이 오면 벌레들은 잠을 잤다. 사막은 일교차가 커서 밤엔 서늘하다. 나는 살그머니 기어나가 밤을 즐겼다. 아파트 화단 사이로 30분 정도 산책할 만한 길이 나 있었다. 숨을 들이쉬었다.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숨을 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밤중의 산책로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날도 나는 걷고 있었다. 반대편으로 황갈색 피부의 남자가 걸어왔다. 날 스쳐 지나갈 때 엉덩이 사이를 만졌다. 엉덩이의 가장 깊숙한 곳에 낯선 손이 닿아 온몸이 찌릿했다. 나의 모든 세포조직이 멈췄다. 남자는 그대로 성큼성큼 멀어져갔다. 나는 소리치려고 했다. 내가 이런 순간에 욕을 할 수 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순간 그 남자가 칼을 갖고 있지나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어쩌면 아랍인은 칼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편견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 남자도 고개를 돌리더니 눈을 찡긋하며 웃었다.

나는 집으로 달려갔다. 엄마에게 모든 일을 말했다. 엄마는 웃었다.

“그러니까 밤에 나가면 안 된다니까.”

나는 방에 들어가서 곰곰이 생각했다. 아직 아무도 제대로 만져보지 않은 내 엉덩이였다. 이름도 알지 못하고 국적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처음 만진 엉덩이가 되었다. 무례한 사람이었다. 이건 수치일까. 가슴이 쉬지 않고 뛰었다.

다음날 밤 나는 여동생 M에게 애원했다.

“같이 산책 좀 갔다 오자. 지금 밖에 나갈 수 없는 거 알잖아. 나 하루 동안 한 번은 나가고 싶어.”

오랜 애원 끝에 승낙을 받아냈다. 전날 일에 대해서는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M의 팔을 꼭 안고 걸었다. 화단의 나무 사이사이로 인도 식당들이 보였다. 공터가 보였다. 호텔이 보였다. 물을 보관하는 큰 통이 보였다. 그때 한 무리의 아랍인 청소년들이 지나갔다. 그들은 낄낄 웃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나누면서 우리 쪽을 힐끔거렸다.

‘그냥 어린애들일 뿐이야.’

나와 M은 서로를 더 끌어안고 걸었다. 부끄러웠다. 보통 여자들은 밖에 나다니지 않는 게 이 나라의 상식인데, 우리는 철없고, 어린, 여자, 외국인이었다. 그 모든 사실이 죄책감이 되어 나를 찔러댔다. 무사히 30분의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화단 속을 빠져나왔다. 화단 길만 빠져나오면 탁 트인 모랫바닥이다.

뒤쪽으로 누군가가 따라오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다리를 움직여 동생과 자리를 바꿨다. 어제 그 남자의 손이 M의 생리대를 만졌다. 그녀에게도 그렇게 깊이 들어온 손은 처음이었다. M은 펄쩍 뛰었다. 동생은 적대감이 담긴 눈으로 나를 봤다. ‘저 사람 뭐야, 언니 뭐야’라는 말을 반복했다. 여자 두 명은 소용없었다. 나는 비겁했다. 우리는 또 큰 소리도 못 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할 일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엉덩이가 몹시도 씰룩거렸다. 어디론가 가고 싶었다. 이 지긋지긋한 집구석탱이 말고 무언가 다른 곳. 다른 곳에 가려면 엄마가(어른이) 필요했다. 안타깝게도 엄마는 다른 곳을 원하지 않았다.

“나는 집이 좋아.”

엄마의 명대사였다. 엄마는 절대 나가지 않고 집에만 콕 박혀있는 것을 좋아했다. 쿠웨이트는 엄마에게 아주 좋은 조건인 셈이었다. 가슴이 꽉 막힌 듯 아팠다. 후텁지근하지 않은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창밖에 있는 것이 초록색이 아니라 노란색과 푸른색, 검은색인 점이 답답했다. 나 혼자 아무 데도 못 간다는 건 서러웠다. 어쩌면 난 향수병에 걸린 건지도 몰랐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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