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의 조개] ➀ 윗몸일으키기 60번 하고 생긴 일 - 박조개

최종 수정일: 1월 25일



✦이 글을 전국의 피억압 중학생에게 바칩니다.✦


Tasha Tudor 가 그린 「세라 이야기」 (소공녀)의 한 장면



중학교 시절, 학교에 안 가겠다는 뜻을 품었다. 나는 자존심이 셌다. 나를 먼지 또는 똥 취급하는 ‘그 애들’을 참아 줄 수가 없었다. ‘그 애들’은 차별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친구들이 나를 배신하게 했는데, 그 정도로는 대응하기 애매했다. ‘그 애들’이 정정당당하게 나를 정면에서 공격하는 순간을 기다렸다. 그때가 오면 너희들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면서 침 뱉으려 했다. 그 애들에게 내뱉을 단어를 손질하며 하루하루를 흘려보냈다.


그 애들도 내가 콧대 높은 상대라는 걸 깨닫게 된 날이 있었다. 그 애들 중 일진 정도 되는 애가 내 앞자리에 앉게 되었을 때였다. 장래희망이 군인인 애였다. 이름이 기억이 안 나니 일진이라고 부르자.

“야, 책상 뒤로 빼.”

일진이는 책상 사이가 좁아서 앉기가 불편했었나 보다. 나는 이걸 시비로 착각했다.

“싫어.”

“뭐?”

“싫다고. 옆줄 책상이랑 줄이 맞잖아. 왜 더 뒤로 빼야 돼?”

일진이는 흥분했다. 마구 욕을 했다. 나는 아랑곳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진이의 커다란 목소리에 당황했지만 자존심은 있어서 물러나지 못했다.


나는 무엇에서든 일진이를 이겨야 했다. 공부라면 의욕도 없고 싫어서, 다른 과목에서 그 애를 누르고 싶었다. 가장 자신 있는 것은 예체능 실기. 미술에서도, 음악에서도, 체육에서도 나는 일진이를 월등히 이겼다. 나는 검도 소년초단 취득자였다.

다른 것보다 내가 체육에서 앞선 것이 일진이의 자존심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체육시간에 내 주특기인 ‘1분에 윗몸일으키기 60회’를 선보인 날, 일진이의 얼굴은 울그락불그락했다.

“야! 나 좀 봐, 야!!”

뒤에서 일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빠르게 계단을 올라갔다.

‘체육복 갈아입어야지~ 얼른 갈아입어야지~’

걸음이 더 빨라졌다. 일진이와 애들이 따라올까 봐 무서웠다. 가슴이 막 뛰었다. 나는 발이 안 보일 정도로 빠르게 걸어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밖이 요란했다.

“야! 박조개 어딨어. 도서관이야?”

일진이의 목소리였다. 애들이 우르르 도서관으로 몰려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체육복 바지를 내리고 치마를 올리고-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제발 포기해라.

“아, 도서관 아니잖아!”

일진이와 애들이 교실 쪽으로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교실은 화장실 바로 앞이었다. 떠드는 소리가 확 커졌다. 한때 나랑 친하게 지냈던 애가 말하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왔다.

“걔 저기 있을걸? 옷 갈아입을 때 화장실 가거든.”

젠장. 이럴 때 담임은 어디 있는 거지? 수업 시작종은?

우당탕탕-

우르르르-

일진이와 애들이 화장실 안으로 몰려들었다.

“야, 박조개 여기 있는 거 다 알아. 지랄하지 말고 빨리 나와.”

나는 교복으로 갈아입고 어떡해야 할지 고민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 생각도 되지 않았다. 뇌까지 덜덜 떨고있었나 보다.

끼익-

막 교복으로 갈아입은 척 짐짓 태연한 표정으로 걸어 나와 일진이를 똑바로 올려다봤다. 울고 싶기도 하고 소리 지르고 싶기도 한 마음을 숨기느라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야, 눈 깔아.”

“왜? 눈 까는 게 뭔데?”

당시 나는 정말로 눈 깔아가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 순간-

짝-

싸다구를 맞았다. 난생처음 싸다구를. 나는 통속 드라마의 여주인공처럼 일진이를 옆으로 올려다봤다. 입술을 더 꼭 깨물어야 했다. 기가 팍 죽었다. 내가 저 애랑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게다가 일진이는 뒤에 따까리를 거느리고 있었다. 대면했을 때 써먹으려고 준비해온 그 많은 욕들이 하나도 생각이 안 났다. 머릿속이 새하얬다.

“니가 왜 왕따인지 말해줘? 니가 왜 재수 없는지 말해줘?”

“야, 바닥 보라고, x발.”

일진이와 따까리가 말했다. 나는 시키는 대로 바닥을 봤다.

여기서부터는 너무 쪽팔려서 안 쓰고 싶지만, 줄거리가 이어져야 하니 쓴다.

“이 반에도 서열이란 게 있어. 너는 그중 최하, 제일 밑바닥, 찐따라고. 넌 날 똑바로 쳐다볼 자격도 안 돼.”

일진이가 나를 내려다봤다.

“.....”

나는 또 입술을 깨물었다.

“너 이 세 가지 꼭 지켜라. 첫째, 계속 눈 깔고 짜져 다닌다. 내 말 따라 해.”

“.... 눈 깔고 짜져 다닌다.”

“둘째, 나대지 않는다.”

“... 나대지 않는다”

“셋째, 입술 깨물지 않는다.”

“.. 입술 깨물지 않는다.”

처절한 패배였다. 따라 하라는 대로 따라 하기까지 했다. 비참함도 그런 비참함이 없었다. 일진이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가자 눈물이 후드득 쏟아졌다. 시작종은 친지 오래였고 수업은 시작한 지 오래였다. 수업은 나 없이도 잘만 굴러갔다.


어이없는 패배였다. 폭력도 협박도 없었다. 굴종은 죽기보다 싫었다. 그러나 시간을 돌릴 수는 없었다. 나는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했다. 내가 여신이 되는 이야기였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가을의 여신이 없어져서 가을이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인간 중 한 명을 골라 가을의 여신이 되도록 훈련을 시켜야 되는데, 내가 가을의 여신 후보로 선발되어 하늘나라로 올라가 훈련을 받게 되고.. 뭐 그런. 내가 짝사랑하던 남자애를 등장 시켜 러브 라인을 넣었고, 미운 오리 새끼처럼 백조가 되어 날아가면서 오리들의 부러움을 사는 장면이 필요해서 인간 세상에 내려오는 장면을 상상했다. 여러 가지 여행과 모험의 욕구를 채우려고 상상 속 가을의 여신을 계속 괴롭혔다. 시골 농가에서 구박받으면서 일하게 하기도 하고 해녀가 되게 하기도 하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었다. 나는 현실보다는 상상 속의 나를 믿고 싶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소공녀」 를 좋아했다. 세라는 친구들과 함께 상상 놀이 하기를 좋아하는 소녀이다. 큰 부자이던 아버지가 빚을 지고 돌아가시면서 세라는 갑작스럽게 가난뱅이가 된다. 하지만 방황은 잠시였고, 곧 가난뱅이여도 ‘공주님 놀이’를 할 수 있는 세라가 된다. 여기서 ‘공주님 놀이’란, 자신을 공주라고 생각하면서 공주가 해야 할 일들을 행동에 옮기는 놀이였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준다든지, 친절해야 한다든지, 몸가짐을 우아하게 해야 한다든지 하는 소소한 일들이었다.


민친 선생은 기가 막혔다.

“내가 뭘 몰라서 이런 짓을 하는 거다, 그런 생각을 했다고?”

세라가 말했다.

“네. 그리고 제가 공주인데 선생님께서 제 뺨을 때리셨다면 어떻게 됐을까- 제가 선생님께 어떻게 했을까, 그런 생각도 했어요. 제가 공주라면 제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짓을 하든 선생님께서 감히 저를 때리시지는 못할 텐데, 그런 생각도 했고, 선생님이 어느 날 갑자기 그걸 알게 되신다면 얼마나 놀라시고 겁나실까, 그런 생각도 했고..”


세라는 나와 비슷한 아이였다. 살기 위해서는 내면에서라도 자존심을 지켜야 했다.


“내가 공주라서 널 용서해주는 거야. 넌 한심한 멍청한 못된 천한 할망구니까, 니가 뭘 몰라서 이런 짓을 하는 거니까 널 용서해주는 거야.”


나는 세라의 속마음에 밑줄을 쫙쫙 그었다. 나는 여신이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단숨에 일진이와 반 애들을 전부, 선생들까지도 날려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콧대를 쳐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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