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솔로진 포토 (AntholoZine Photo) <Life Goes On> 커버스토리 - 다울

ⓒ AntholoZine Photo, 발행인 : 김다미, 디자인 : 오혜진
비밀리에 결성된 7인 여러분께 ¶ 안녕하세요, 정말 반가워요! 7인 여러분의 이름도 성도 국적도 모르는 채 저에 대한 주요 정보를 조금 드려도 될까요? 저는 한국에 사는 이다울이고 5년 전부터 만성 통증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처음 2년 정도는 고통으로 누워 있을 수밖에는 없었고 통증 탓에 잠에 드는 것이 어려웠어요. 현재로서는 당시보다 호전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통증이 없는 감각은 기억나지 않고, 학교생활이나 직장생활이 어려운 상황이에요. ¶ 쾌유가 계속해서 지연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계획한 것들을 끝없이 유예시키는 일이었어요. 다행히 저는 니트(NEET)족이었기 때문에 큰 차질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난 여행에서 노쇠하고 지혜로운 구루를 만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깨달음을 얻고 그로 인해 영적 치유를 받은 인간승 리 드라마가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대신해 지지부진하게 계속되는 삶에 관해 쓰며 지내고 있습니다. ¶ [AntholoZine Photo]의 커버스토리를 쓰게 된 만 큼 저와 이미지의 각별함에 대해 나누고 싶어요. 무한 스크롤의 인스타그램과 틱톡의 세상에서, 이미지는 범람이나 홍수 같은 수식어를 몹시 자주 동반 하는 듯합니다. 사진 기술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도 말세야 말세야 하고 수군거렸다던데 이미지는 발전하고 변화할 때마다 종말에 대한 상상을 하게 하나 봐요. 최근에 본 4부작의 한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는 한국이 문해력 최하위국이라며, 한국 사회의 심각함을 심각히 알리고 있었습니다. 정보기술과 시 각 매체의 발달 탓이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한 기자의 ‘팩트 체크’ 시리즈에 따르면 사실이 아니라는데요, 방송의 자료는 무려 20년 전의 것이라고 하네 요. ¶ 그런데 저는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부터, 문해력은 둘째 치고 활자를 읽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어요. 워낙 참을성이 부족하고 집중력이 낮은 편이 긴 하지만 그동안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두통으로 달랑달랑 머리통이 끊어질 것 같은 느낌. 글자에서 더 이상 의미를 읽어낼 수 없었습니다. ¶ 매일의 삶을 지속해야 할 이유를 잃어갔고 인지능력이 크게 저하되었어요.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아마도 제 전두엽에 문제가 생겼을 거라고 했습니다. 저는 읽는 것을 포기하고 보는 것을 택했어요. 무언가를 본다는 건 각성과 안정을 동시에 느끼게 했습니다. 같은 시기, 갖가지 이미지 중심의 플랫폼이 빠르게 성장 하였기 때문에 가속도가 붙었어요. 저는 그렇게 이미지의 홍수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 노트북 컴퓨터를 한시도 떨어뜨려 놓질 않았으니 저의 몸은 높은 비율로 인터넷에 접속해 있는 상태였습니다. 사이보그가 되었어요. 누워서도 컴퓨터를 볼 수 있는, 반사경 달린 안경을 구매했습니다. 전자레 인지에 두 개의 핫팩을 데워, 각각 머리 밑과 허리 위에 두었습니다. 컴퓨터 배터리의 연결선을 길게 연장했습니다. 그것은 변화한 몸에 최적화된 환경을 찾아나가는 여정이었어요. 최대한으로 통증을 방지하며 삶을 지속하기 위해 몸을 개조하는 과정이었죠. ¶ 다음으로 하는 일은 역시 수십 개의 크롬 창을 열어두고 수백 개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 제게 매일 입력되는 다량의 이미지는 또 다른 정신건강의 문제와 문해력 저하의 원인이 되었 지만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빠른 속도로 전파되는 온갖 밈을 꿰기 시작했어요. 밈은 마치 새로운 유형의 글로벌 언어로 보였습니다. 우리 밀레니얼 세대 가 드디어 한 건 하는구나 싶었죠. 그러나 종종 종말의 기운 또한 감지했습니다. 세상 만물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건 아주 통쾌하면서도, 중요한 가치를 모욕하며 모독하는 듯했어요. ¶ 한편, 인터넷 문화를 이유로 제 세대에 자아도취적이라는 혐의를 두는 것은 못마땅했습니다. 그에 대한 반격의 시뮬레이 션을 돌리고 싶었고 그러려면 직접적인 탐사가 필요했어요. 일종의 파수꾼 역할을 자처한 것입니다. 실은 열두 살 때부터 셀피를 찍어 온 저 자신에 대한 특단의 보호 조처입니다. ¶ 범람하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각별함은 그렇게 쌓여왔어요. 갖은 이유를 든 탐사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통증이 전에 비 해 나아졌기 때문에, 그 공간은 침대 위에서 책상 앞으로 확장되었어요. 지난해 생애 첫 안경을 맞췄고요. 모니터 속 잔상은 꿈에 나타나 저를 괴롭히기 도, 웃겨주기도 합니다. 대중문화와 하위문화를 연구하고 문화적 레퍼런스를 수집하고 있다고 답해도 사랑하는 친구의 한심한 눈길을 거둘 수는 없습니 다. ¶ 종말이 올까요? 아니면, Life goes on(삶은 계속된다)? 두 가지 모두 종종은 반갑고 종종은 두려워요! 7인 여러분의 사진을 몹시 기다리고 있어서 지금 당장은 세상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요. 모쪼록 재야의 각종 파수꾼을 지망하며 가능한 만큼 유예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2022.1.6.
다울 드림.


* 2022년 11월에 발행 된 앤솔로진 (AntholoZine Photo) <Life Goes On> 커버스토리를 썼습니다. 앤솔로진 포토는 7명의 사진과 글이 7개의 달력(2022년 12월~2023년 6월)과 함께 구성되어 있으며, A1 사이즈로, 포스터처럼 벽에 붙여 활용할 수 있습니다. 커버스토리는 BIN님을 통해 영어로도 번역 되었으며 지면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구매는 일본과 한국에서 가능하며 (700¥ (세금포함)/ 7,000원) 한국에서의 오프라인 구매는 서점극장 라블레(https://www.instagram.com/rabelais.kr/), 일본에서의 오프라인 구매는 11월 20일, 도쿄에서 열리는 문학 프리마켓에서 하실 수 있습니다. 문의 (https://www.instagram.com/antholo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