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받은 날 - 서가재

최종 수정일: 5일 전



이중섭 <물고기와 노는 세 아이>



일은 설날부터 꼬였다. 서른 살이 됐고 안정적인 직장도 없고 내로라할 작업물도 없으며 하다못해 대학 졸업장도 없어서 불안했는데, 괜찮다고 토닥여줄 애인도 없어서 어깨를 펴기 힘들었다. 타투이스트 친구는 돈이라도 추구해서 월천댁이 됐다. 난 이십대 내내 ‘의미’를 찾아다녔다. 사회에 도움이 되고 공동체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려고 했다. 모시는 스승이 젊은 시절 '베트남전쟁 중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을 인터뷰하고 책을 쓴 사람이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다고 정의감에 불타는 액티비스트는 아니었다. 고작 스승이 만든 여행학교의 교사로 일하고 있을 뿐이다. '성소수자 자살예방을 위한 역학조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무지개행동'에 나서는 것도 아니다. 교사로 일하기와 성소수자로 살기는 병행하기 벅찼다. 교사는 아무래도 신중하고 섬세하며 권위가 있어야 하는데 나는 한껏 여성화되고 싶은 남교사였으니까.


설날에 배낭을 챙겨 엄마집이 있는 전라북도 무주에 갔다. 친가 가족들이 모였다. 서른 살이 된 것으로 친지들의 결혼 압박이 본격 시작됐다. 여자친구 있느냐부터 어떤 사람이 이상형이냐, 요즘은 결혼해도 여자가 제사 안 지내려 한다더라, 자식은 몇 명 가질 거냐, 돈은 어떻게 버느냐, 무주에 내려와서 사과 농사나 지어라 등등.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이야기는 들불처럼 번졌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재산 분할은 어떻게 하냐는 문제까지 붉어지자 엄마와 작은엄마가 말다툼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이 천박한 고졸들' 아뿔싸, 나도 고졸이지. 외가와 달리 친가는 3대를 탈탈 털어도 대졸자가 아무도 없었다. 혼자 방으로 들어가 아이피티비 영화를 뒤적이다가 뜬금없이 <겨울왕국>을 틀었다. 엘사가 얼음 초능력을 들키지 않으려고 산으로 들어가며 렛잇고를 부르자 눈물이 찔끔 나왔다. 게이라는 걸 밝히지 못하는 내 처지 같았다. 엘사를 산골짜기에서 꺼내주며 언니의 초능력도 괜찮다 긍정해주는 친동생 안나는 가족 중에 없을 듯했다. 친가 가족들은 섹스와 젠더의 차이도 모를 것이라 여성주의 교양수업을 먼저 수강해야 했다.


다음날 상경하는 버스 안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고 싶다.' 바로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에 세 개의 숫자를 올렸다. 167-64-28. 각각 키, 몸무게, 나이였다. 강서구에서 자취한다고 적고 뒤에 바텀이라고 썼다. 남자 역할의 탑들만 연락 달라는 뜻이었다. 마지막엔 카톡 익명채팅방 주소를 적어놓았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두 명의 남자에게 연락이 왔다. 노련한 남자와 미련한 남자였다. 나는 슬픔의 용기를 빌어 "2:1 어떠세요?"라고 물었고 승낙을 얻었다. 이상한 날이었다. 주로 게이들은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곧장 "사교 괜찮으세요?"라고 묻는다. 사교는 사진교환의 줄임말. 육체 스펙 다음으로 알아야 하는 건 '얼굴 사진'인 것이다. 남자들은 눈깔이 달린 걸 티내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절감하며 사교를 지속해왔다. 평상시 내 사진을 보고 거절하는 비율은 70%에 육박했다. 열 명 중 일곱 명은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고 토깠다. 물론 얼굴을 모르고 만나는 경우도 드물게 있었다. 언젠가 인천의 어느 주택가 집 앞까지 찾아갔는데 카톡방이 폭파됐다. 2,3,4,5층 어딘가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카톡방을 나간 것인데 집집마다 벨을 누르고 다닐 순 없었다. 그때 중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고전문학 박씨전이 떠올랐다. 결혼 첫날밤, 남편에게 "어떻게 이런 곰보빵이랑 자니!"라는 모욕적인 말을 듣고 소박맞은 박씨부인. 그녀가 나라를 구하고 천복을 누린 걸 떠올리며 하느님께 나도 복 많이 주셔야 할 거라고 뇌까렸다.

물론 내가 소박 맞힌 적도 한번 있었다. 그는 사진과 달리 뚱뚱했다. 내 취향이 아니었다. 멀리서 슬쩍 보고 도망쳤다. 그 남자가 먹튀남으로 날 신고해서 경찰의 전화까지 오는 소동이 있었다. 카톡 일주일 사용정지 처분을 받고 다짐했다. 소박을 맞더라도 소박을 맞히진 말자. 그러니까 2:1, 쓰리썸의 성사는 그간의 소박에 대한 보상처럼 뜻밖의 일이었다.


노련남이 약속시간 보다 이십 분 먼저 도착했다. 그는 쓰리썸 경험이 있다며 나를 리드했다. 은근하고 섬세한 손길이었다. 내가 해봤던 경험 중 최고를 다툴 수 있었다. 남자도 충분히 애무해줘야 아프지 않다는 사실을 고맙게도 알고 있는 남자였다. 절정으로 가는 중간에 미련남이 도착했다. 미련남은 키가 훤칠하고 몸도 탄탄하고 얼굴도 반반한 사람이었다. 알몸상태로 달려 나가 그를 맞이할 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인생 최고의 날이다!’


쓰리썸은 이어졌다. 십 분 후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둘이 키스를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미련남은 내 몸을 실수로라도 만지지 않았다. 결국 둘 사이에서 점점 밀려나 침대 옆 소파에 앉았다. 그들이 서로 귀엽다고 말하면서 절정으로 치닫는 모습을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지켜봤다. 아, 탑(남자역할)끼리도 할 수 있구나. 어쩌면 당연한 걸 잊고 있었다. 당장 둘을 내쫓을까 하다가 소박을 맞히지 말자는 교훈을 되새기며 기다렸다. 끝이 나고 두 사람은 씻었다. 팬티를 입으며 노련남은 나에게 미안해했다. 전혀 의도한 게 아니었다며. 미련남은 내가 맘에 들지 않는지 거들떠도 안 봤다. 나는 견우와 직녀를 이어준 까마귀의 마음으로 말했다. "둘은 남자역할이라서 만날 일이 없었는데 내가 이어줬네요!" 미련남만 하하 웃었다.


둘을 보내고 한동안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이런 종류의 소박이 있을 줄 상상하지 못했다. 다음날 스탠드업 코미디 모임에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 결심하고 노련남에게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나중에 둘이 또 와요. 장소 공짜로 빌려줄게요." 하느님은 원래 나한테 주려던 복의 백배는 더 내려야 할 것이다.


(2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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