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만나는 작은 사람들 - 박조개

최종 수정일: 5일 전


Jessie Willcox Smith <Looking Glass River>




1.

유치원에서 일하게 되면서 매일 아침 낙산에 갔다. 좁은 골목 사이로 옷을 실은 오토바이가 지나다녔다. 낙산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은 겉보기에는 가정집 같지만 실은 바쁘게 굴러가는 봉제공장이다. 청계천으로 내려가면 평화시장 노동자들을 위해 스스로 불에 타 죽은 청년의 동상이 있었다. 그 뜨겁던 시절의 기억을 어느 구석엔가 간직한 채, 낙산으로 밀려난 이들은 여전히 봉제공장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

부다다다 지나다니는 오토바이의 뒷모습만 얼핏 보아왔다. 오토바이에서 내리는 사람의 헬멧 속 얼굴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 사람과 똑 닮은 여섯 살, 일곱 살짜리 아이의 얼굴을 함께 보았다. 한 오토바이에 세 사람이 탔다. 셋이 타기 위해서 몸을 바짝 밀착시켜야 했다. 아이는 두 사람 사이에 끼여서 안 보이다가 내리면 보였다. 교문 앞에서 등교 지도를 하는 내 눈은 아이에게 맞춰져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아이들은 이마가 약간 빨갰다. 차가운 아침 바람을 가르며 도로를 달리는 순간을 상상하게 했다.


지금 유치원생 시절을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거리두기가 하나의 트라우마로 남을 거라는 말을 들었다. 유치원 아이들은 거리두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얘들아 거리두기 해야지”

말하면 스스로 친구들과 떨어질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아침 아이들에게 코로나 19에 대해 가르치고 있었다. 아이들은 반복해서 물었다.

“마스크 왜 써야 해요?”

“네가 에취 해서 아프면, 너만 아프고 끝나는 게 아니라 옆 사람도 에취! 하고 아프게 되어서 그래.”

선생님이 대답했다. 아이들은 줄을 설 때도 멀찍이 떨어져 설 줄 알았다. 친구와 껴안아서도, 서로 기대서도 안 된다는 말을 매일 들었다.


유치원에서는 하루에 한 번씩 아이들을 데리고 운동장에 나갔다. 학교 앞에는 넓은 운동장과 꽃이 심어진 정원이 있었다.

“안 데리고 나가면 또 아쉬워할 거야.”

힘들어하면서도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는 선생님들을 보면, 꼭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내 모습 같았다. 살아있는 것들은 하루에 한 번은 바깥 공기를 쐬어야 했다.

아이들이 모두 등교하던 날, 야외수업을 도우러 나가게 되었다. 담임선생님이 모래에 여섯 개의 커다란 네모를 그렸다. 하나의 네모 안에 한 명의 아이를 넣었다.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쥐여주었다.

“얘들아, 네모 안에서만 그림 그리기 하고 노는 거야~”

아이들은 정해진 네모 공간 안에서 각자 막대기로 모래를 파면서 놀았다. 그건 그 애들이 원하던 게 아니었다. 두꺼비 집을 만들면서도, 개미집을 만들면서도 옆 친구랑 같이하고 싶어 했고, 다 만들고 나면 자랑을 하고 싶어 했다. 한 명이 개미집을 만들기 시작하면 두세 명의 아이들이 옆에 붙어 구경하고 싶어 했다. 나는 그 아이들을 떼어내 각자의 네모 안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서연아, 서연이 공간으로 돌아가야지.”

서연이는 그날따라 유독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싫어”

칭얼댔다. “싫어”를 열 번이나 들을 때까지 설득했다. 피로 때문에 눈앞이 아찔했다. 설득하면서도 별로 자신이 없었다. 서연이가 정민이랑 떨어져서 저 멀리 있는 네모에 쭈그려 앉으면 분명 재미없을 것이다. 말썽 피우지 않고 자기 네모 안에 얌전히 앉아있는 아이들은 좀 침울해 보였다. 모래를 깊이, 깊이 파고 있었다. 아주 깊이 파내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내게 자랑 한마디를 했다.

“선생님. 나 개미집 무지 깊게 팠어요.”

나는 작게 감탄해주었다.


2.

여섯 살 재원이는 나를 보면 딱밤 때리는 손동작을 했다. 처음 그걸 맞았을 때 “아야!” 하면서 아픈 척을 하니, 그때부터 맛을 들였다. 재원이의 손은 어른 손 5분의 1 크기여서 아프지 않았다. 재원이는 딱밤을 때리고 나서 “꺄르륵” 하고 웃었다. 눈이 작은 선이 되었다.

나는 선생님이 아니라 방역지원으로 고용된 잡일 하는 사람이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급하게 만들어진 일이었다. 아침 등교 지도와 방역이 기본업무고, 그때 그때 바쁜 일에 투입되었다. 재원이 하고도 교실이 아니라 주로 복도에서 오며 가며 마주쳤다. 그 애를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은 내 친구야?” 재원이의 질문에 “응”이라고 대답했다.


여섯 살 아이들 스무 명이 전부 등교했을 때, 돌봄 지원으로 교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한글날을 맞아서 색지를 기역, 니은 모양으로 오려 흰 도화지 위에 붙이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여섯 살 반 담임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청년 선생님은 못 따라오는 애들을 도와주시면 돼요.”

그리고 아이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시더니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잘 모르겠으면 선생님한테 가지고 나와.”

아이들이 한꺼번에 담임선생님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여러 아이에게 둘러싸여서도 자기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는 담임선생님에게 감탄했다. 나도 바지런히 일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뒤쪽 자리에서 가람이가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눈이 커다랗고 곱슬머리인 아이였다. 나는 옆에 앉아서 얼굴을 들여다봤다. 눈가가 촉촉했다.

“가람아, 울어? 왜 울어..”

물었지만 답이 없었다. 종이를 오리는 일도 하지 않았다. 따라가지 못한다는 게 이런 뜻인가 싶었다. 오려볼래? 어설프게 타일렀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재원이가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내 등에 올라타기도 했다. 쉬지 않고 움직이면서도 종이를 오려 붙이는, 즉 해야 할 일은 다 했다. 기역니은을 오려서 아무 데나 붙이는 정도가 아니었다. ‘사랑해’라는 글자를 만들었다.

“선생님, 내가 제일 사랑하는 게 누군지 알아?”

“아니 잘 모르는걸.”

“우리 엄마.”

“그렇구나.”

“그럼 너 내가 두 번째로 사랑하는 게 뭔지 알아?”

“뭔데?”

“노란색을 두 번째로 사랑해.”

나는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미소는 지어봤자 마스크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재원이가 노란색 옷을 입고 엄마 손을 잡은 채 등원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사랑하는 것들이 곁에 있어서 행복하겠구나. 재원이는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고 ‘너’라고 불렀다. 친구냐는 질문에 ‘응’이라고 대답했던 일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은 생각보다 많았다. 한글 오려 붙이기를 하고 나서 책 만들기를 해야 했고, 그 이후엔 꽃목걸이 만들기를 해야 했다. 진도에 맞춰 착착 해나가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첫 번째 단계에서부터 못 따라가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못다 한 일이 산더미 같아져서 아찔했다. 나의 역할은 어떻게든 하던 일을 포기하지 않고 마무리 짓게 하는 것이었다. 아이의 앞에 앉아서 설득해보기도 하고, 대신 완성해주기도 했다. 산만해서 못하는 아이도, 침울해서 못 하는 아이도, 산만하든 침울하든 할 일은 잘하는 아이도 있었다.


재원이는 내 팔을 잡고 계속 곁에 있어 달라고 말했다. 나는 조금 부담스러워졌다.

“나 화장실 청소하러 가야 해.”

의외로 쉽게 놓아주었다. 그 길로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는 여자아이용 좌변기 3개, 남자아이용 좌변기 2개, 소변기 4개 그리고 어른용 좌변기 1개가 있었다. 어른용 소변기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 교사가 한 명도 없었다. 나는 변기와 문, 손잡이, 세면대 등을 닦았다. 사람 손이 자주 닿는 곳을 계속 닦는 것이 방역 일이라고 했다.

재원이와 가람이가 들어왔다. 오줌 싸는 곳으로 곧장 향하지 않고 화장실 입구에서 뜸을 들였다. 세면대를 닦던 나는 고개를 들어 두 아이를 보았다. 두 아이는 손을 가슴 쪽에 모으고 킬킬대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너희 왜 온 거야?”

재원이가 조금 더 크게 킬킬대며 대답했다.

“장난치러.”

나는 크게 웃었다.

“나 보러 온 거야?”

아이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날은 그 일을 생각하며 오래 웃었다.


하루는 교실에 들어가자 재원이가 나를 몹시 환영했다.

“청년 선생님! 어서 와!”

나는 당황했다.

“안녕 재원아!”

“선생님은 왜 청년 선생님이야?”

재원이의 물음에 갑작스레 대답하기가 싫어졌다.

“몰라”

“청년 선생님은 다른 친구들 도와줘!”

재원이는 내가 못 따라가는 친구들을 도와주러 교실에 왔다는 걸 알았다. 그는 산만하지만 똑똑해서 내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다. 너무 똑똑해도 문제였다. 나의 위치도 너무 잘 알고 있을 것만 같았다.

유치원에서 나는 “청년 선생님”으로 불리고 있었다. 겨우 3개월 짜리 계약직의 이름을 굳이 외울 필요는 없었다. 방학이면 오고 가는 근로장학생은 ‘학생 선생님’으로 부르던 모양이었다. 나는 근로장학생이 아니라, 무직 청년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주는 ‘청년 희망 일자리 사업’으로 고용된 것이기에 약간의 변주를 주어 ‘청년 선생님’으로 불렸다. 잡일을 주로 하는 내가 선생님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치원에서는 모든 성인을 ‘선생님’으로 불렀다. 노동운동을 하는 친구는 “선생님으로 불린다는 점은 낫네.” 하고 덧붙였다.

재원이는 그날 이후 나를 ‘청년 선생님’으로 불렀다. 식당에서 김치를 더 달라고 부탁할 때도 이렇게 말했다.

“청년 선생님, 김치 좀 더 줘.”

아이들에게 음식을 더 줄 때는 선생님들이 (밥 먹는 도중에) 짬짬이 도와주었다. 나의 경우 점심이 제공되지 않아서 점심을 먹지 않고 아이들이 먹는 것을 도와주었다. 하루 4시간만 근무하는 단기노동자였기 때문에 퇴근 후 먹으면 됐다. 아이들이 먹는 걸 보고 있으면 허기가 져 편두통이 찾아오는 날도 있었다.

“그래.”

대답하고는 재원이의 식판을 들고 김치를 더 받으러 갔다. 그때였다. 담임 선생님이 다가오더니, 재원이를 야단쳤다. 청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건 실례야, 라는 맥락이었다. 선생님이 속상하잖아. 라고도 하셨다. 별안간 깜짝 놀란 재원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 그래도 시옷 모양으로 내려간 눈썹이 더더욱 시옷이 되었다.

“하지만 청년 선생님이잖아요.”

앓는 소리를 했다. 나는 괜스레 미안해져 재원이에게 다가가 조금 안아주었다.

“선생님은 이름이 뭐예요?”

“나는 조개야. 조개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돼.”

내가 대답했다. 재원이가 내 이름을 기억할 것 같지는 않았다. 쓰이지 않는 단어는 기억하지 못하는 법이니까.


3.

유치원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서른 명의 아이들 이름을 아직 외우지 못했을 때였다.

단발머리 다섯 살 여자애가 화장실에 들어왔다. 나는 화장실 방역을 하고 있었다. 그 애는 내가 방역을 하는 내내 변기에 앉아 있었다. 손을 씻고 나가려는 차에,

“선생님...”

하는 조그만 목소리가 들려왔다.

“똥 싸써요...”

아이들이 똥을 싸면 ‘뒤처리’를 해 줘야 한다고 들어서 알고 있었다. 교무실에 있다 보면 가끔 “띵동, 띵동” 하고 벨소리가 들린다. 똥을 싼 아이가 뒤처리를 부탁하기 위해 누르는 벨소리였다. 그 소리를 듣고 선생님들이 서둘러 교무실 밖으로 나가곤 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이 여자아이는 벨을 누르지도 않았고, 나에게 뒤처리를 구면으로 부탁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 집 나이 든 개 똥구멍밖에는 닦아 본 적이 없었다. 어린애 똥구멍이라고 해서 뭐가 다를까. 조그만 화장실 문을 열어젖혔다. 아이의 팬티에 똥이 많이 묻어있었다.

“어.. 어떡하지?”

나는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옆 칸에는 유치원 담임 선생님이 볼일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이 일을 맡겨버리고 싶었다.

“팬티에 묻었는데 어떡하죠?”

“뒤처리 해 주세요.”

담임 선생님은 당연한 듯 내게 일을 맡겼다. 그때, 여자아이가 말했다.

“저 깨끗한 옷 있어요. 저기 서랍장에 있어요.”

유치원 벽면을 따라 아이들의 신발과 가방과 실내화와 여분의 옷을 보관하는 기다란 장이 있었다.

“이름이 뭐야?”

나는 여자아이에게 물었다.

“상희요”

나는 상희의 서랍을 찾아내 자그만 옷이 담긴 비닐봉지를 꺼냈다. 그 안에는 팬티와 바지가 들어있었다. 나는 상희의 똥 묻은 팬티와 바지를 벗겼다. 그리고 잠시 기다렸다. 상희가 알아서 엉덩이를 닦을 줄 알았던 것이다. 상희는 가만히 앉아있었다.

“상희야, 엉덩이 들어볼까?”

내 말에 상희는 익숙한 듯 엉덩이를 높이 들었다. 상희의 변과 엉덩이가 둘 다 보였다. 나는 휴지로 상희의 엉덩이에 붙은 변을 닦았다. 아이의 엉덩이는 늙은 개의 엉덩이보다 깨끗했다. 너무나 뽀얗고 분홍색이고 부드러웠다. 깨끗한 옷을 입혀줬다.

“감사합니다.”

상희는 감사 인사를 하더니 총총 교실로 떠났다. 나는 변기 물을 내리고, 더러운 옷을 비닐봉지에 넣고, 손을 닦았다. 빨래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것 같았다. 묵직한 비닐봉지를 그대로 교실에 있는 담임 선생님한테 가져다주었다. 화장실 방역 및 청소를 시작한 시점부터 시간이 30분이나 지나 있었다. 그대로 퇴근해야 할 시간이었다.


퇴근하러 밖에 나오면 저절로 활기찬 기분이 되었다. 오후 한 시의 따듯한 햇볕이 온몸을 감쌌다. 커다란 식물이 심어진 화분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알로카시아, 수국, 금귤, 작약, 감자, 해바라기, 산마늘, 옥잠화, 체리세이지, 멜론, 맨드라미, 퍼랭이꽃 같은 이름표가 붙은 식물들이었다. 붉은 꽃을 뽐내고 있는 식물도 있었고, 금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나무도 있었고, 커다란 푸른 잎을 사방팔방으로 늘어뜨리고 있는 식물도 있었다. 식물들 옆 계단에 잠시 퍼질러 앉아 일기를 썼다.

“누군가 전혀 기억도 나지 않는 사람이 내 엉덩이에 묻은 똥을 닦아주었을 것이다.”

한 문장을 쓰는 사이 경비 아저씨가 식물들에게 물을 주러 다녀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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