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에 대하여 - 풀

최종 수정일: 11월 19일




나는 초등학생 시절에 <강아지 대백과>를 닳도록 읽었다. 카발리에 킹 찰스 스패니얼 같은 개의 긴 이름과 특징을 외우는 나 스스로가 몹시 대견했다. 집에서 지내는 동물을 반려동물 말고 애완동물이라고 부르던 때였다. 말하자면 나의 엄마가 초가집에서 열 식구와 살며, 집에서 지내는 동물을 가축이라고 부르던 시기를 지나 도시로 상경해 아들딸을 낳은 뒤 아파트살이가 익숙해지던 때였다. 너도나도 동물 병원에서 강아지를 분양받았고 어른들은 개를 키우는 지인에 “새끼 치면 연락 줘” 같은 말을 인사치레로 사용했다.


우리 집은 잠시 요크셔테리어 종의 개 쫑이와 살았다. 쫑이는 똥오줌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엉덩이를 맞아야 했다. 쫑이는 엉덩이 쪽으로 손이 올라가기만 하면 곧바로 앓는 소리를 냈다. 쫑이의 앓는 소리는 십오 년이 지난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쫑이는 1년이 채 안 되어 너무도 간단하게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 뒤로 우리 집은 동물과 함께 살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티브이 방송에서는 집에서 함께 지내는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조금씩 가르쳐주었다. 백인 전문가가 말하면 한국인 성우가 더빙하는 식이었다. 그것을 보고 들을 때마다 쫑이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에서는 사람이 족제비의 털을 잔인하게 벗기거나 어린 수퇘지의 성기를 떼거나 수백 마리의 닭을 비좁은 사육장에 몰아넣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수시로 보여줬다. 그것을 볼 때마다 속이 메슥거렸다. 학교에는 닭장이 있었다. 대여섯 마리의 닭들은 거대한 닭장을 뛰어다니거나 급식 당번들이 수레에 싣고 온 유기농 잔반을 쪼아 먹거나 알을 낳았다. 학생들은 알을 수거해 갔고, 연말이면 닭을 잡았다. 호기롭게 닭을 잡아보겠다고 말한 친구들은 일을 다 치르고 나서 속을 게워내고는 했다. 워낙 운동량이 많았던 닭들은 시중의 닭보다 살이 질겼다.


십 대 후반의 어느 날 도시락을 싸서 혼자 동물원에 갔다. 칠이 벗겨진 낡은 동물원이어서 그런지 동물의 수가 적었다. 철장 속의 새와 원숭이와 양을 오랫동안 쳐다봤다. 그날따라 나와 너무 다르게 생겼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일순간 공포를 느꼈다. 동물원의 동물들은 그들끼리도 아주 달랐다. 그런데 그들은 어쨌거나 저쨌거나 편의상 동물이라 불렸다. 내가 지금 동물을 동물이라 말하고 있는 것처럼. 어릴 땐 분명 인간도 동물이라 배웠는데 동물원에 인간은 없는 것처럼. 호랑나비와 오랑우탄의 DNA 유사성이 인간과 오랑우탄의 DNA 유사성에 비해 현저히 낮아도 굳이 영장목과 나비목으로 구분하는 편보다는 인간과 동물로 구분하는 편이 더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런데 동물원 철장 앞에 가만히 서 있다 보면 너무나 다른 생물들을 동물이라고 퉁치는 것이, 조금 불경하게 여겨지는 것이었다.


나는 점점 동물들과 내외하기 시작했다. 나와 다른 언어를 쓰는 그들에 실수를 할까 염려되었다. 산책하는 개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물었다. ‘내가 당신을 동물이라는 이유로 귀엽게 여겨도 됩니까? 혹은 갸륵히 여겨도 됩니까?’ 어떤 동물행동학자는 귀여움이 '아기 도식’의 작동 구조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무언가가 작은 몸집과 큰 머리, 통통한 몸, 큰 눈과 작은 코 같은 인간 아기의 특징을 가졌다면 귀여워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팟캐스트 진행자는 어느날 예쁜 것과 약한 것이 같다고 말했다. “예쁜 것은 드물고, 금세 사라지고, 훼손당하기 쉬운 것이지요. 약한 것입니다. 약하고 사라지기 쉽기 때문에, 그런데 절대로 사라지길 바라지 않기 때문에 슬픈 것이기도 하지요.”


시간이 점점 흐르고 티브이 방송에서는 동물 훈련사라는 이름의 전문가들이 인기를 끌며 그간 인간이 동물들에 범한 실수를 일러주었다. 이번에는 다들 내국인이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길에서 살던 고양이를 키웠다. ‘나만 고양이 없어’라고 적힌 티셔츠가 인터넷 사이트에서 판매되었다. 내가 한창 <강아지 대백과>에 빠져있을 때만 해도 길고양이는 불운의 상징이었다. 고양이와 눈을 마주치면 안 된다는 소문 탓에 고양이의 앞모습은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 단지를 달리며 놀다가 아파트 지하에 난 작은 창문을 통해 고양이의 팽창 된 눈동자를 보았다. 털이 까만 고양이였다. 그날 밤에는 악몽을 꿨다.


사람들이 길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반려동물 산업과 함께 성장한 것은 세계 최대 비디오 플랫폼인 유튜브였다. 티브이가 안방을 영화관으로 만들었다면 유튜브는 모르는 타인의 안방을 구경하게 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섬유근육통이라는 이름의 난치 질환으로 몸이 무지하게 아팠다. 3년 정도는 눅눅한 침대에 등과 엉덩이를 끈끈하게 붙이고 누워 온갖 동영상을 섭렵했다. 동영상 속의 안방을 점한 동물들은 스타가 되었다. 각자의 미모와 재주를 뽐냈고 기구한 사연을 끝도 없이 들려주었다. 미디어는 힘이 셌다. 나는 점점 일면식도 없는 동물들과 친밀감을 형성해 나갔다. 검색창에 수시로 ‘동물’이라고 타자를 쳤다. 기타를 메고 버스킹하는 사람 앞에서 고개를 까딱이는 비둘기를 보았고 코코넛을 부수는 침팬지를 보았고 개처럼 공을 물어오는 고양이를 보았고… 여하튼 무수히 많은 동물을 봤다. 문득 동물원에서 스스로 물었던 질문이 떠올랐다. ‘동물을 동물이라 퉁쳐도 되는 걸까?’ 유튜브는 안방을 거대한 사이버 동물원으로 만들었다.


끊임없이 고양이 동영상이 추천되는 탓에 내게 저주를 걸던 고양이들은 무시무시한 모습에서 누구보다 귀여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각자 다른 집에 거주하는 고양이들의 이름을 금세 외웠고 티브이를 통해 동물 행동 전문가나 수의사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밥그릇과 물그릇의 이상적인 위치 같은 것들을 배웠다. 전문가들은 정말 많은 것에 대해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인기를 끌고 있는 전문가들은 곧잘 광고를 찍었다. 그들이 제작과 연구에 참여했다는 영양제와 가구 따위의 것들은 반려 동물이 없어도 사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를 너무 자주 듣다 보면 티브이 프로그램 <비타민>을 보던 때가 생각이 난다. <비타민>은 15년이나 방영해서 결국에는 심기증을 일으키게 했던 건강 정보 프로그램이다.


동거인 A는 내 모습을 줄곧 지켜보더니 고양이를 데려오자고 했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웃었다. 동물과 여전히 조금은 데면데면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언어를 쓰는 이들의 요구와 욕구를 완벽히 헤아릴 자신이 없었다. A는 고양이와 소통하는 것이 같은 언어를 쓰는 인간과 소통하는 것보다 쉬운 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는 내가 쫑이를 쉽게 들이고 보냈던 과거를 잘 몰랐다.

나는 종종 들키면 안 될 사람처럼 유기 동물 보호소 웹사이트를 기웃거렸다. 그곳에는 정말 많은 개와 고양이가 있었다. 그들이 몹시 귀엽게 보여서 마음의 소리가 끊임없이 메아리쳤다. ‘제가 당신네를 데려다 놓고 귀여워해도 됩니까?’ 개나 고양이가 쥐를 잡고 인간이 먹이를 주는 식의, 서로가 서로를 길들여왔던 수천 년도 더 전의 일은 오히려 이해가 쉬웠다. 하지만 먹이를 제공하는 대신 귀여움을 취한다는 건 ∙∙∙ 경제력이 있는 나이 든 남성이 가족의 생계를 부양해야 하는 젊은 여성을 취하는 일처럼 여겨졌다.


A는 내게 생각이 과하다며 고양이에게는 두 가지 옵션이 있다고 했다. 길에서 혹은 보호소에서 지내다 일찍 죽거나(안락사당하거나) 우리와 함께 살며 조금 더 길게 사는 것이 그 옵션이라고 했다. 그는 고양이의 행복이 수명의 길이와 비례한다는 듯 단순히 말했다. 그와 내가 고양이에게 안락한 생활을 제공할 것이라는, 의심의 여지 없는 책임감과 자신감을 표했던 것이기도 하다.


나는 귀여움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고양이의 귀여움에 대해서, 어린아이의 귀여움에 대해서, 아기 도식, 테디베어, 엄마가 나를 낳고는 똥 냄새까지 귀엽다며 기저귀에 코를 가까이 댔던 일, 전철 안에서 손바닥 두 개로 전기 놀이를 하며 숨 죽인 채 킬킬 웃던 모자, 갓난아기의 배냇머리를 닮은 겨울 산 ∙∙∙. (20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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