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릿, 클래식] ➀ - 의미


Marie Bashkirtseff <Femme lisant à l’angle d’un piano>




한창 피아노를 연습하던 나는 단언했다.

“사람들이 왜 음악회에 가는지 모르겠어요. 돈 낭비도 그런 낭비가 없죠. 난 절대 연주회에서 울게 될 일은 없을걸요. 더군다나 가사도 없는 음악이라면요.”

순간 G 선생님의 얼굴에 떠오른 경악을 기억한다. 애초에 그럴 거면 피아노를 왜 치는 거냐, 묻고 싶은 표정이랄까.

“그래도 열심히 해야지. 음. 피아노를 잘 치면 나중에 다른 음악을 하는 데도 도움이 많이 돼. 음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도 익히고. 영어 같은 거야. 외국어를 다 잘할 필요는 없지만, 영어는 기본이잖아.”

“전 영어도 안 할 건데요.”

늦깎이 대학생인 그는 나의 보조 선생님이었다. 그는 내 주변에서 두 번째로 음악이 고픈 사람이었다. 다른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다 과감히 음대 편입에 도전했고 성공했으며, 지도교수의 촉망을 받았다. 과탑을 놓친 적 없던 그에게 담당 교수는 나를 맡겼다. 정확히는 본인의 레슨을 더 잘 알아듣게 하기 위한 보조 교사로 그를 섭외했다. 열두 살 입시생을 위해 두 명의 스승이 달라붙었다. 나는 세상 시니컬하고 소심한 어린이로 뭘 듣던 시큰둥한 반응으로 그를 자주 곤란에 빠뜨렸다. 가령,

“(멘델스존 소나타를 치던 중) 멘델스 존은 아홉 살 때 처음 연주회를 연 거 알아? 그러니까 완도 열심히 연습하면 연주회를 열 수 있을지도 몰라. ”

“연주회 공짜로 하는 거 아니잖아요. 우리 집 돈 없어요.”

“(몹시 어려운 표정)... 그렇구나”

흥미를 유발하려는 그의 노력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곤 했다. 그럼에도 그는 부지런히 담당 교수의 지시와 그해의 입시 트렌드를 고려하며 부지런히 나의 미래를 이리저리 저울질했다.

정면에는 멘델스존 소나타 악보가 펼쳐져 있었다. 다닥다닥 붙은 콩나물 음표 위로 영의 필기가 크로키처럼 흩날렸다. 내가 교수에게 레슨을 받을 때면 영은 나보다 더 열심히 그의 말을 공들여 받아 적었다. 레슨이 끝나면 본인의 노트 필기를 나에게 건넸다. 교수가 얼레설레 넘겼던 말까지 자잘히 기록되어 있었다.


우리 집 거실에는 영의 연주회 사진이 걸려있었다. 황금색 드레스를 입은 영은 보라색에 가까운 둔탁한 립스틱을 바르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옆에 졸린 눈으로 안겨있는 내가 있었다. 키가 너무 작아 영에게 안긴 건지 드레스에 안긴 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기억 속 영은 항상 피아노를 쳤다. 그녀가 연주하는 반주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리며 자랐다.

그녀 역시도 피아노 선생님이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전공자는 아니었다. 클래식이 너무 하고 싶던 신학대학 졸업생이었다. 열정의 기원을 찾자면 더 어릴 적 그녀의 단상을 꺼내 와야 했다. 고등학교 1학년, 친애하는 음악 선생님의 한마디가 뇌리에 꽂혔다 했다. 우리 미영이는 연주자가 되어야겠네. 뒤늦은 입시 준비와 4남매의 장녀였던 그녀는 어정쩡하게 음악을 포기한 채 성적에 맞춰 대학을 갔다. 나를 낳고, 동생을 낳은 후에야 모 대학에서 주최한 음악치료사 프로그램을 수료했다. 연주회까지 마치고 나니 그제야 본인도 피아노를 가르칠 수도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말했다. 떡볶이를 먹으면서 들었던 고백이었다.


지겨운 연습 속에 내가 기다리던 유일한 재미는 레슨 후 먹던 떡볶이였다. 교수의 집 근처 오래된 상가엔 엄마 아빠가 연애하던 시절 자주 드나들던 떡볶이집이 있었다. 이 지겹고 의미 없는 짓을 왜 하나 싶으면서도 영과 떡볶이 먹으러 가는 걸 멈출 순 없었다. 뚝뚝 끊기는 밀떡을 굵은 고춧가루 튀김에 흠뻑 묻혀 김말이 튀김과 함께 씹으면 그만한 행복이 또 없었다. 무엇보다 한없이 솔직해지는 시간이었다. 떡볶이집은 이를테면 정기적 미팅 장소였다. 영은 나의 매니저였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날의 수업 브리핑을 시작하곤 했다. 튀김이며 떡꼬치, 오뎅에 정신없는 틈을 타 스리슬쩍 주제를 돌렸다.

“두음씩 연습한 부분 있잖아. 훨씬 좋아졌다잖아. 다른 왼손 스케일 부분도 그렇게 연습해보자.”

“(우물우물) 응.”

“‘따라라라-’ 그 부분은 피아노랑 피아니시모랑 소리 차이가 별로 없는 거 같아, 엄마 생각에도. 강약조절이 확실해야 할 거 같아.”

“(우물우물) 알았어.”

그날 레슨이 만족스러웠다면 꼭 뻥튀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바삭한 뻥튀기 사이로 부드러운 소프트아이스크림이 녹아 뚝뚝 떨어졌다. 떡볶이로 뜨거웠던 배가 바닐라 아이스크림으로 시원하고 달곰했다. 운전석의 엄마는 시디를 넣어 그날 레슨 받았던 음악을 틀었다. 차에는 항상 시디가 넘쳐났다. 백혜선과 강충모, 정명훈, 보리스 베르조프스키 같은 거장들의 앨범이 시대별, 종류별로 구비되어 있었다.


온종일 피아노를 쳤다.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하고 이 닦고 바로 피아노 방으로 향했다. 등, 하교 하는 친구들을 창문 너머로 보면서 피아노를 치다가 저녁이 되면 버스를 타고 엄마가 운영하는 피아노 학원으로 갔다. 엄마가 학원 문을 닫을 때쯤 도착해서 연습을 시작하면 엄마가 저녁을 사 들고 왔다. 같이 저녁을 먹고 나선 학원 문을 잠갔다. 문이 잠긴 학원 안에서 연습하면 연습하는 나를 그녀는 지켜봤다. 물론 지켜보지만은 않았다. 함께 들은 수업을 복기하면서, 각자의 해석을 버무려서 조언했고 합의 끝에 받아들였다. 밤 열 시가 넘으면 주변 아파트에서 민원이 들어왔기 때문에 아홉 시 55분이면 엄마와 함께 학원을 정리했다. 쉬는 날은 없었다. 엄마는 주말에도 학원 문을 열었다. 텐 투 텐(10 to 10)을 쉼 없이 붙어 다녔다. 피아노는, 음악은 곧 영이었다. 눈을 뜨고 감는 모든 순간 피아노가 있었고, 그녀가 있었다.


정말 열두 시간 내내 피아노를 쳤냐 하면, 당연히 아니었다. 열두 시간 앉아있는 건 맞지만 선율과 박자를 느끼고 친 건 손에 꼽았다. 피아노 방에 들어가면 한 손으론 피아노를 두드리고 한 손으로는 책을 읽었다. 리듬에 맞춰 책장을 넘겼다. 세상에는 아르페지오를 고르게 연주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너무 많았다. 왜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에게 집착하는지. 집착은 어떤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 제인 에어는 왜 로체스터 씨를 떠나지 않는 건지. 스칼렛 오하라는 래트를 진정으로 사랑했는지. 소설에 흠뻑 빠져 있다 보면 어느새 학원을 갈 시간이 되었다. 엄마는 늘지 않는 나의 실력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분명 연습하고 온 거 맞지?”

“어휴, 어머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종일 연습하고 온 사람한테.”


의심이 쌓여가는 동안 나는 문학 시리즈를 독파해갔다. 혼자 울고 혼자 웃었다. 소설 속 여자들은 때론 지지부진하지만 대담하게도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 혼자 같은 자리에 머무는 것 같았다. 좁은 피아노 의자 위에. 멘델스존과 쇼팽, 베토벤, 모차르트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지금 내가 하는 고민에 비하면 그들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몰랐다.


피아노 독주회나 음악회를 가면 꼭 졸았다. 아무튼 클래식이라면 별수 없었다. 눈꺼풀이 한없이 무거워지고 몸은 가라앉았다. 한번은 전설적인(영의 말에 의하면) 정 트리오의 음악회 VIP석을 구해 단둘이 보러 갔는데 박수 소리에 화들짝 놀라 깨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가 부축을 받으며 무대 앞으로 나오고 있었고 사람들은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분명 방금 시작한 줄 알았는데. 어 벙벙한 채 박수를 따라 치니 영이 옆에서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영은 눈길을 돌려 그 할머니를 오랫동안 응시했다. 나는 할머니를 응시하는 영의 옆모습을 주시했다. 영은 분명, 울고 있었다. 흐릿했던 머리에 물을 부은 듯 시야가 맑아졌다. 영이 부끄러워할까 곧 시선을 돌렸지만, 마음이 복잡했다. 왜 울지, 왜 우는 거지. 내가 잘못한 건가. 비싼 표를 낭비해서? 내가 한심해서?


“아까 봤던 할머니 있잖아.”

운전하던 영이 먼저 운을 뗐다.

“정명화, 정경화, 정명훈 엄마래. 그 옛날에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피난길에 피아노를 가져갔대.”

아득하게 오랜 전설을 읊조리는 듯 영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진지했다.

그녀의 목소리와는 정반대로 가슴이 철렁, 달음박질치기 시작했다. 영의 의도는 알겠고 그 기대에 부합하기는 내가 너무 모자라서. 이럴 거면 천재를 낳지, 항변하고 싶었다. 말이 나오는 대신 눈물부터 고였다.

“너 이제부턴 콘서트에 안 데려올 거야. 매번 엄마 창피해. 코도 골더라?”

“...코 곤 거 아니라 숨을 깊게 쉰 거거든.”

“하여튼 이제는 진짜 안 데려와.”

영은 끊임없이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고민하면서도 예매했고 나는 따라갔다. 영은 황홀했고, 탄복하여 눈물을 흘렸으며 그런 그녀를 옆에 두고 나는 세에엑- 섹, 정신없이 잤다. 수많은 경고에도 퇴장이란 없었다. 다음 기회 앞에서 송구스러워하면서도 눈꺼풀의 무게를 이기진 못했다. 내가 아는 제일 “음악 고픈 사람”은 영이었다. 애정 어린 영의 열정에 나는 자주 지쳐 잠이 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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