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의 일기>가 <천장의 무늬>로 2020년 9월 30일 출간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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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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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조심스럽게, 세상을 들춰내고 온힘을 다해 말하는 글을 얼마만에 읽는 것일까. 우리를 납작하게 눌러대려는 세상의 언어로부터, 빛을 잃은 눈들로부터 구해내는 용감하고 따뜻한 목소리. 연민이 깃들지 않도록 신경 쓴 작자의 흔적들에서 그가 겪은 고충을 짐작할 수 있다. 연민과 이입이 아닌, 웃음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결코 투명할 수 없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게 된다. 바로 보고 말할 것.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목소리로 응답할 것. '감각'이 구호처럼 범람하는 세태이지만, 우리에게 진실로 유일하게 가장 먼저 필요한 감각은 바로 살과 피와 슬픔과 기쁨, 모든 감정을 지닌 사람에 대한 것 뿐이다. 이러한 원칙 없이, 우리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다울의 책은 가장 단순한 진실을 일깨운다. 그 어떤 교훈적 의도나 설파 없이, 간결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독자로서 완성되기 전 원고를 읽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지만, 종이로 만나는 다울의 책은 완전히 새로운 선물이었다. 더 많은 이들이 이 선물을 온전히 누릴 수 있기를.
덧 : 공동체에 대한 환상. 너무도 쉽게 허물어질 수 있는 약한 관계들에 관해서 생각한다. 우리가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게 아니라 그가 우리를 포함한 세상을 견디고 있음을 상기할 것.
-피에르 루이스 황 (점성학 박사 수료생) -
‘아픈 몸과 함께 살아가기’에 대한 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다울의 《천장의 무늬》는 글쓰기에 관한 책이다. 통증과 통감은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이다.
“어디가 어떻게 아프세요?”라는 질문은 난감하고 곤혹스럽다. 이해할 수 없는, 납득할 수 없는, 규정할 수 없는, 공유할 수 없는 통증의 시간이 빚어내는 불안과 불화와 조울에 대해 이토록 치열하게 섬세하게 용감하게 맞선 글쓰기는 지금껏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이다울의 옆에 있어주었던 사람들에게도 감사를 전하고 싶어진다. 우리 시대의 버지니아 울프를 지킨 사람들이다.- 김현아 (작가, 여행학교 ‘로드 스꼴라’ 대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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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울의 글에는 이름 없는 통증에 잠 못 이룬 수많은 시간과 눈물이 너울거린다. 그 시간을 함께 보내준 뜨거운 팥 주머니와 코미디 방송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 동물들에게 무척 감사하다. 우리들은 타인의 통증과 무기력한 시간에 무엇을 보탤 수 있을까. “빨리 나아서 건강해져.” 아픈 친구에게 응원이랍시고 쉽게 건넸던 말을 반성하게 된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힘주어 눌러쓴 게 분명한 통증의 기록을 공유해준 이다울에게 생각도 몸도 굳지 않는 유연한 밤과 무적의 여름날이 더 많이 찾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 이랑 (뮤지션,작가,만화가,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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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하고 적나라한
내 방은 그리 넓지 않아서,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고 벙커 침대를 놓았다. 서랍으로도 쓰이는 세 칸짜리 흰색 계단을 오르면 침대가 있고, 그 아래는 책상의 자리. 그래서일까, 나는 예전보다 천장을 조금 더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침대에서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기가 어려울 만큼 천장이 가까워졌다.
대체로 천장보다 벽을 볼 일이 많을 것 같지만, 나는 아니다. 항문에서 느껴지는 정체 모를 이물감이나 찢어지는 듯한 통증으로 걷기가 힘들 때면, 나는 팔을 벽에 기댄다. 그 와중에도 손이 닿으면 흰 벽지가 지저분해질까 봐 꼭 팔만 기댄다. 가끔은 그렇게 걷다가 힘들고 억울해서 벽에 기댄 팔에 이마를 대고 숨을 몰아쉰다. 벽은 주로 짚거나 기대는 곳이다. 몸에 자주 닿아서 익숙하지만, 눈에 담을 일이 많지는 않다.
천장은 벽과 같은 벽지인 것 같은데, 아마 나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는 사람이라면 내 방의 천장이 꽤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아픈 걸 숨기고 싶지는 않지만 보여줄 주삿바늘은 없고, 으레 SNS가 그렇듯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지만 방의 모습을 그대로 찍기에는 대체로 정돈이 안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당장 내 눈에 바로 보이면서, 별 의미 없다고 생각한 천장을 찍어서 스토리로 올리곤 했다. 누군가는 음식을, 누군가는 반려동물을, 누군가는 친구들과의 만남을 자랑하는 공간에 나는 슬쩍 내 방의 천장과 거실의 식물을 찍어 올린다.
며칠 전, 나는 회의가 있는 날에 몸이 너무 안 좋아서 휴대폰 화면조차 보기가 어려웠다. 결국 2층 침대에 반쯤 기어 올라가서 누워 간신히 채팅을 올렸다. 내가 조장이지만 회의에 못 참여할 것 같으니 진행을 대신 맡아줄 사람이 있는지 부탁했다. 2층 침대에 오르는 일은 생각보다 아주 피곤해서 웬만하면 자기 전까지는 다시 오르지 않으려고 하는데, 쉬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에는 별다른 수가 없다.
그날도 그랬다. 전날 밤부터 이어진 정체 모를 어지럼증과 메슥거림, 구역질. 뇌가 태양이라면 눈은 지구 같았다.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 눈을 감으면 눈이 핑그르르 돌아 뒤집히며 자전하고, 동시에 내 뇌를 중심으로 두고 공전하는 것 같았다. 토가 밀려 나오는 듯했다. 그렇게 몸이 정신을 못 차릴 때, 눈을 다시 뜰 때마다 보인 것은 천장의 무늬였다.
잔잔하게 파도가 치는 것 같기도 하고, 얼룩이 진 것 같기도 하고, 벽지랑 비슷한데 어딘가 낯선 하얀색. 깨끗한지 지저분한지도 헷갈리는, 묘하게 얼룩진 하얀색.
나에게 천장의 무늬는 아플 때 가장 익숙해서 지긋지긋하면서도, 무늬가 희미해서 매번 새롭고, 나의 방이라는 사적인 공간을 감추려고 찍지만 사실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통증의 순간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며, 누워 있어야 한다는 억울함과 함께 누워 있다는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는 것이다.
『천장의 무늬』를 읽고, 이다울 작가님과 대담을 나눈 이후 내 방의 풍경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나를 감추려고 찍던 천장의 무늬가 실은 그 순간 나의 몸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몸이 좋을 때는 무언가에 집중하기 전 주변을 정돈하지만, 몸이 안 좋을 때는 무언가에 집중할수록 주변이 지저분해진다는 사실도.
나는 글을 쓸 때 이미 합의된 말을 찾고, 그것을 토대로 삼아 나의 언어를 전개하는 편이다. 오직 나의 경험만으로는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충분히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장의 무늬』는 아픈 사람의 이야기에만 집중할 때도 사회적 맥락이 자연스레 다가오고, 아픈 사람의 경험이 기존의 논의와 명시적으로, 반복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그 자체로 살을 파고드는 언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렇게 솔직하고 섬세한 관찰이라면, 자신의 몸과 그것을 둘러싼 관계들을 살아내면서 느낀 삶의 기쁨과 슬픔을 이렇게 담아낼 수 있다면, 바로 그런 문장들에서 질병 세계의 언어가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별 의미 없는 벽지인 줄 알았던 천장의 무늬는 사실 나의 아주 내밀한 시선과 그 너머에 힘없이 누운 나를 보여준다. 그 사실을 『천장의 무늬』를 읽고서야 알았다. 천장의 무늬는 그만큼 희미하면서도 적나라하다.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은 내가 올리는 천장의 무늬를 보고 아픈 나를 어떻게 상상하게 될까?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들의 아무 의미도 없는 듯한 사진에서 무엇을 상상할 수 있게 될까.
- 안희제 (작가)
출판사 제공 책소개 ◎
"나는 무슨 병을 갖게 된 것일까?"
원인 모를 통증의 원인을 찾기 위해
섬세하고 대담하게 써내려간 반려 질병 관찰기
가만히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으면 불안과 걱정이 증식한다. 이대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닌가, 아무것도 못한 채 삶을 탕진하는 것은 아닌가 불안해진다. 작가 이다울은 그런 상상이 불안을 자아내고, 떠오른 불안이 또 다시 상상력을 자극하는 일에 정지 버튼을 누른다. 《천장의 무늬》는 불안과 공포를 한 걸음 바깥에서 바라보고자 시작한 통증과 생각의 기록이다.
훌라후프로 낯선 동네 대회에서 뻔뻔하게 1등을 차지하고, 씨름판에서 두 배 몸집의 아이를 넘겨 젖히고, 하고 싶은 것이 뭐냐고 묻는 담임선생님에게 ‘기물 파손’이라고 말하는 소녀였던 이다울에게 어느 날 갑자기 통증이 찾아온다. 양치를 할 때 턱이 벌어지지 않고, 이불을 털다가 신발을 신다가 병뚜껑을 열다가 온몸에 쥐가 나고, 걸을 수도 앉아 있을 수도 없어진다. 누인 몸을 겨우 일으켜 온갖 병원을 다녀 봐도 병명을 찾지 못한다. 그때 가장 간절한 것은 바로 그 병명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자신의 아픔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은 실제적인 통증만큼이나 무딘 칼처럼 마음을 베었다. 그때부터 이다울은 자신의 몸과 삶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아픔은, ‘그래도 견뎌보라’거나 ‘요즘 다들 그렇다’라며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아픔을 드러내는 일이 곧잘 엄살이나 나약함으로 낙인찍히는 사회에서, 아픔에 대한 이다울의 기록은 많은 이에게 공감과 위로가 된다. ‘천장의 무늬’라는 제목에는 그녀가 누워 있으며 보냈을 그 시간과 공간, 불안과 상상이 얼룩져 있다.
그녀가 써 내려간 각각의 이야기들은 책장을 넘길수록 하나의 무늬로 완성된다. 그 안에서 우울과 비관에 움츠러들기보다, 통증과 함께 공존하며 서서히 자신만의 삶의 방식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다. 부러 비참해지지도 않고, 부러 희망차게 굴지 않는 것. 그것이 작가 이다울의 글의 특징이다. 이 담백한 문장을 읽고 있노라면 이상한 평온함 속에 몰입을 느낄 수 있다.
작가가 말하듯, ‘통증의 알갱이’들은 삶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기에 예민한 통증을 유난스럽게 생각하는 엄마에게 느끼는 서운함, 오래 서 있을 수 없던 탓에 원하던 일자리에 지원하는 것조차 연습이 필요했던 일, 침대에 누워 아픔과 무관하게 즐길 수 있는 낭독회와 전시회를 상상하는 것 등. 이윽고 통증이 불러오는 식욕의 부재와 우울감,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구분들이 생활을 바꾸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변화시킨다.
건강했던 시절에서 그것이 파손되는 역사를 나열하며 그녀는 과거의 기억을 현재와 엮어낸다. <팥 주머니>, <보드게임>, <해변에서의 유희> 등 하나의 사물을 보며 과거의 흔적에서 현재를 포착하는 방식은 시간을 넘나드는 유려한 이야기의 흐름을 보여준다. 글의 호흡에서 일종의 곡예가 느껴진다면 바로 이다울의 글이 그럴 것이다. 일상의 둘레를 외줄타기 하는 사람. 보는 사람은 떨어질까 조마조마하지만, 정작 공연하는 이는 그 나름의 균형감을 즐기며 왕복하는 그것 말이다.
쉽게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을 담으려 하는 작가이기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더욱 치열하게 다가가고자 한다. 애써 에둘러 이야기하려다 하고 싶은 말을 놓치기보다 금기 없이 다양한 소재와 어휘를 구사하며 오랜만에 글다운 글을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이다울의 글은 이름을 갖지 못한 통증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든든하게 손을 내민다. 이 책을 통해 세상 모든 아픔이 쉽게 말해지기를, 저마다의 언어를 찾기를 바란다.
목차 ◎
저자의 말
파손
병명 찾기
상상
엄마와의 동거
수영장
체온 유지실
류와의 동거
넷플릭스
약
동네
팥 주머니
해변에서의 유희
보드게임
중국 유학
피임
토끼
공작
주말 알바
크림라떼
건강 교실
굴뚝
비행기 삯
태국 여행 1
태국 여행 2
리모델링
훈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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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보 2
칼 든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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